기록의 공간

의인 이수현은

누군가를 구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청년이었습니다.

" 저는 최대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일을 해도, 공부를 해도 즐겁게 하고…
언제든지 뒤돌아섰을 때 후회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영웅이기 이전에
빛나던 청년

의인 이수현은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되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고 운동을 즐기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한 명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낯선 사람과도 금세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으며,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늘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평전 “이수현, 1월의 햇살”의 기록처럼, 그는 음악과 운동과 인간과 세상을 온 힘을 다해 사랑했던 청년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온 20대 젊은이였기에, 그가 보여준 인간애와 용기는 우리에게 더욱 큰 경외감과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바다를 닮아
넓은 마음을 품다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난 수현 님은 부산에서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 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주변을 밝게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의 가르침 속에서 매사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웠고,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키워갔습니다.

젊다는 건
후회하지 않는 것
열정과 도전의 시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진학한 후의 시간은
수현님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준비한 시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한 올바른 기준을 지키며 치열하고 건강하게 젊음을 채워나갔습니다.
특히 밴드 활동을 하며 기타 연주에 몰입하여 선율을 창조하는 기쁨을 누렸고,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도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며 세상을 직접 마주했습니다. 등산과 수영 등 운동을 즐기며 육체와 정신의 건강한 균형을 이뤄낸 그의 삶은 젊다는 건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두 나라의 가교를
꿈꾼 일본유학

수현 님은 군 제대 후 더 넓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일본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2000년 1월 도쿄의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에 입학한 그는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훗날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낯선 타국의 환경 속에서도 그는 긍정적인 태도로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생전 고난과 역경도 인생의 한 부분이며, 언제든지 헤쳐 나갈 용기가 있다고 말했던 그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단단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일본으로 향한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그는 한 사람의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의 이름보다 먼저 그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CMANIA